같지만 다른 그림이 민화의 매력입니다. (by 김나현 푸른초 교사)

발행일 : 2021-10-07 17:14  

 티처빌매거진 Class Know-How 

"같지만 다른 그림이 민화의 매력입니다"

  민화 작가이자 초등 교사인 빛나는 나현쌤 

 

 글. 김나현 푸른초등학교 선생님 

꼭 취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힘든 순간을 달래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을 높여준다. 그리고 때론 취미가 새로운 재능이 되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제시하기도 한다. 오늘 만나볼 선생님도 학교와 육아에서 지쳤던 마음을 민화를 그리며 극복하다 현재 민화 작가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선생님이라는 본업 외 작가라는 점도 신기하지만, 어떻게 ‘민화’라는 우리나라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민화처럼 오묘한 매력이 있는 김나현 선생님의 ‘민화테라피’에 지금 초대한다.


녹록지 않았던 초임교사 시절 나를 위로해준 '민화'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자리에 앉아볼까?” 교실에서 첫마디를 한 이후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그 해 9월 초임 발령을 받고 들뜬 마음으로 교실에 발을 내디딘 첫날, 여러 번 담임 선생님이 바뀐 아이들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인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 또한 처음 아이들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학생들과 관계 맺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버티듯 학교에 가던 어느 날, 같은 학년 선생님께서 그림 그리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우와! 선생님! 그림이 정말 예쁜데 어디서 배우시는 거예요?” “우리 학교 교사 동아리에서 배울 수 있어요. 2학기 초에 모집했는데 못 보 셨구나!” 같은 학년 선생님께서 교사 동아리 활동으로 민화를 배우시는 것을 보고 바로 민화 동아리에 가입했다. 민화를 배우며 교실에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리 선생님들과 학급 운영의 어려운 점 을 이야기 나누며 위로를 받고 실질적인 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 발령 초기에 민화를 그리기 시작해 그 매력에 푹 빠져 다음 해에는 학생 민화동아리를 운영했다.

 

공모전에 참여하며 시작된 ‘민화 작가’ 도전기

결혼 후 육아휴직을 하면서 좋아했던 민화를 더는 그릴 수 없었다. 즐겁게 민화를 그렸던 기억이 흐릿해져 갈 무렵 이사를 했고, 먼지가 가득 쌓인 화구를 발견했다. 더 그릴 일이 없을 것 같아 중고로 팔까 싶었는데 이상하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화실이나 공방에 가서 민화를 다시 배우자니, 아이들이 많이 어려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집이 감옥같이 느껴지던 어 느 날, 맘카페에서 육아용품을 살펴보다가 ‘홈클래스’ 공지 글을 보게 됐고, ‘집에서 나갈 수 없다면 집을 바꿔보자!’라는 생각으로 우리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 민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원데이 클래스를 이어가던 중 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체험단 신청 및 공모전 참여 공지를 보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신청했는데 당첨이 돼 민화를 그릴 때 필요 한 물감을 선물로 받았다. 체험단으로 받은 민화 재료로 2주 안에 공모전에 낼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친정 식구와 남편이 두 아이를 돌봐준 덕분에 기한 내에 를 제출할 수 있었다. 결과 발표날,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 공지에서 내 이름이 ‘대상’에 있는 것을 보고 식구들과 함께 기쁨과 고마움을 나누었다. 그렇게 민화 작가로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긴 육아 터널에서 나를 살린 민화, ‘민화테라피’

공모전에 수상한 이후에도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민화 가르치는 일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마음 맞는 몇 분과 ‘민화테라피’라는 이름으로 마을동아리에 지원하게 되었다. ‘민화’ 뒤에 ‘테라피’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긴 육아 터널에서 너덜너덜 해진 자존감을 민화가 채워줬기 때문이었다. 이후 엄마가 되고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글로 써서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자존감 수업’을 출간했고, 장 마다 민화를 그려 삽화로 넣었다. 책의 이야기와 민화를 그린 경험을 엮어 ‘엄마의 자존감 회복 프로그램’이라는 부제로 ‘민화테라피’ 강의를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 을 SNS에 포스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검색이나 댓글로 강의를 제안받는 일도 생겼다. 그렇게 ‘민화테라피’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하면서 밑그림만 그려진 하얀 종 이에 내가 좋아하는 색을 만들고, 붓질하는 그 과정을 함께 나눴다. 민화를 처음 접한 분들도, 그림을 못 그린다는 분들도, 한 겹 한 겹 색을 올릴수록 아름답게 완성되는 그림을 보면서 뿌듯해하고 즐거워 하셨다.

 

소망과 바람이 담긴 그림, 민 

민화는 밑그림이 있어서 처음 접하는 분들도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민화에 밑그림이 생기게 된 이유는 민화가 유행했던 조선 후기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민화는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유행했다. 여유가 생긴 서민들이 왕과 양반들만 가질 수 있었던 그림을 가지게 됐고, 수요가 많아지자 많은 그림이 필요해졌다. 이때부터 전문 화가가 아닌 사람도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밑그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민화는 형식이나 틀에서 벗어나 표현이 자유분방하고 그림의 구도 또한 파격적이다. 민화의 수요가 많았던 이유는 민화가 아름다웠던 것뿐만 아니라 그 속   에 사람들의 소망과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많이 알려진 민화 ‘까치 호랑이’ 그림인 <호작도>는 새해 첫날, 나쁜 귀신은 호랑이가 물리치고 좋은 소식은 까치가 불러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문에 붙인 그림이다. 금실 좋은 부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꽃과 새 또는 나비를 그린 <화조도  >를 신혼부부의 방에  붙이기도 했고,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공부하는 선비의 방에는 <어변성룡도>와 <책가도>를 걸어두었다. 유교 정신을 교육 하기 위해 그려진   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별한 문자도이다. 뭐니 뭐니 해도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도>는 인기가 많아 지금도 많이 그린다.

 

모사에서 창작까지, 민화의 매력 

옛 그림을 본떠 도안을 만들어 똑같은 밑그림으로 색칠만 하는 민화를 보고 사람들은 ‘창의력이 없는 그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민화의 단편적인 면만 보고 내리는 판단이다. 같은 본의 그림이라 할지라도 그 그림을 그리는 개인의 ‘소망’과 ‘이야기’가 다르고 사람마다 색감이 달라 완성한 후에는 서로 다른 작품이 완성된다. 같지만 다른 것이 민화의 매력이다.

창의력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 가지고 있는 역량을 융합해 상황에 따 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즉 ‘모사’의 과정을 통해 차곡차곡 ‘민화’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창작이 가능해 지는 것 이다. 민화의 다양한 상징에는 의미가 담겨 있어 그 의미를 먼저 잘 알고, 조합하면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두 번째 공모전에 도전한 <바람>을 창작할 때도 왕을 의미하는 <일월오봉도>와 무릉도원을 그린 <해학반도도>의 상징과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조선의 태평성대를 바 라는 왕의 마음을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 모양 안에 표현한 창작 민화가 바로 <바람>이다. 부채 자체로는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다. 부채를 움직여야 비로소 바람이 생겨난다. 공모전에 도전해 보았던 ‘움직임’이 미술을 전공 하지 않은 나에게 ‘민화 작가’라는 생각하지도 못한 모습을 만들어 준 것 처럼 말이다.

창작민화 <바람>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작은 움직임을 불어넣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에이~ 내가 무슨!’ 하는 마음을 ‘한번, 해 볼까?’하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나의 부채’를 힘껏 흔들어 소망과 바람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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