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빌매거진] 잘자야 좋은 교사다 by 아주대 김경일 교수님

발행일 : 2021-10-0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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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야 좋은 교사다  

 

  글.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선생님, 어젯밤 잘 주무셨나요?” 국내 최고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에 따르면 ‘잘 자야 좋은 교사’라고 합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어떤 말과 행동을 할까요. 잘 자는 것과 좋은 교사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요. 그 이유를 지금 들어볼까요.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좋아한 그런 분이셨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이야기, 즐거웠던 여행담, 혹은 친구분들과 있었던 배꼽 잡는 에피소드 등을 담담하면서도 소박한 어조로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중 꽤 많은 친구는 그 선생님을 통해 세상과 어른들의 담백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재미를 느꼈다. 그런데 그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이유없는 짜증 역시 가감 없이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 짜증 섞인 행동 중에는 어린아이들이나 할 법한 손톱 물어뜯기도 있었다.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해야 하는 입장에 계신 분이 손톱 물어뜯기를 하니 발음은 엇나가고 어색해지기 일쑤였다. 학생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다리를 떠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마치 우리 또래 아이들 같은 방식으로 화를 내실 때도 있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이었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보여주시는 그런 모습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고자 하는 친구들은 정신이 사나워져서, 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친구들은 그 행동 자체가 눈에 거슬리는 불편함이 있었다.

필자의 집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사셨기에 졸업 후에도 가끔 그 선생님을 동네에서 마주쳤고, 인사를 드리곤 했다. 대학원 다닐 때 즈음으로 기억된다. 우동 한 그릇을 먹으려고 동네의 포장마차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 선생님께서도 홀로 소주 한잔하고 계셨다. “선생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술친구나 하자며 옆에 앉으라고 하셔서 두어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심리학과에 다닌다고 하자 대뜸 이런 질문을 하셨다.

“경일아, 잘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모르면 좀 찾아보고 알려줘라.”

꽤 취하신 선생님께서는 아직 그 대답을 할 한만 지식도 전혀 없는 제자에게 당신께서 오랜 세월 동안 힘들어하셨던 수면장애에 관련된 이야기를 제자에게 풀어놓은 것이다. 물론 그날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그 답을 꽤 알고 있다.

『의지력의 재발견』이라는 책의 저자로 세계적인 석학인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를 비롯한 수많은 심리학자가 한결같이 말하는 것을 필자도 공부했으니 말이다. 잠이 부족한 사람은 그다음 날 어떤 어려움을 겪는가. 상식적인 것은 졸음과 피곤함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측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기 습관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지원자는 다음날 면접 장소에 들어가 앉자마자 면접관 앞에서 다리를 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잠이 많이 부족한 기업인이 기자들 앞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코를 후비는 경우도 있다. 상견례 전날 거의 잠을 못 잔 남자가 다음날 약혼녀의 부모 앞에서 육두문자가 불쑥 튀어나오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다 그들의 습관이다. 혼자 있을 때 나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포장마차에서 그 선생님께서 취중에 나에게 하셨던 말씀 중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바로, “나도 안다. 내가 수업 중에 손톱 깨물고 다리 떤다고 너희들이 뒤에서 흉본 거 말이야. 그런데 아무리 신경을 써도 잘 안 되는 날이 있더라고. 허허허.” 은퇴를 앞둔 그 선생님께도 적지 않은 상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에 수십 명의 학생을 마주해야 하는 교사의 책무이자 직업윤리 중 하나가 바로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는 얼리 버드(Early Bird) 로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너무 강하게 지닌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평생에 걸쳐 잠이 부족한 분이 되셨던 것 같다.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4시간만 잔 나폴레옹을 결코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년에 자충수를 거듭한 이유로 누적 된 수면 부족을 꼬집는 경우가 더 많다. 잠만 자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나라에는 특히 잠이 부족해 보이는 선생님들이 너무 많다. 만성적인 수면장애에서부터 잠을 죄악시하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심리학자의 눈으로는 아무리 연구해 보고 보고서를 검토해도 교사가 잘 자야 아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 교육도 바로 설 수 있다. 이제 이 정도의 내용은 말씀드릴 수 있는 공부를 한 심리학자가 됐는데 안타깝게도 그 선생님께서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나셨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요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70대에. 참 매력 있는 선생님이셨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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