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존재, 이희승

발행일 : 2022-06-30 10:56  

 

 

묘한 존재, 이희승

사람이란 대체 묘한 존재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선 묘하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묘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생각하려고 하는것이 묘하고, 백인백색(百人百色)으로 얼굴이나  성미가 다 각각 다른 것이 또한 묘하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인데도, 아는 체하는 것이 묘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건마는, 다 뛰려고 하는 것이 묘하다.

제 앞에 죽어가는 놈이 한없이 많은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만은 영생불사 (永生不死)할 줄 아는 멍텅구리가 곧 사람이요, 남 골리는 게 저 골는 게요, 남 잡이가  저 잡인 줄을 말큼히 들여다보면서도, 남 잡고 남 골리려서 저만 살찌겠다는 욕심장이가 곧 사람이다. 

산 속에 있는 열 놈의 도둑은 곧잘 잡아도, 제 마음 속에 있는 한 놈의 도둑은 못 잡는 것이 사람이요, 열 길 물속은 잘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더니, 십 년을 같이 지내도 그런 줄은 몰랐다는 탄식을 발하게 하는 것이 사람이란 것이다.

요것이 대체 말썽꾸러기다. 차면서도 뜨겁고, 인자하면서도 잔인한 말썽꾸러기다. 내가 만일 조물주였더라면, 천지 만물을 다 마련하여도, 요것만은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 곧 사람이다.

사람은 묘한 존재다. 나 자신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다. 알고도 모를 묘한 존재다.(1946년)

                                                                                                                       이희승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일조각,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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