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교사 10일차 <교사의 관계-모두에게는 작은 냄비가 있다>

발행일 : 2024-04-19 08:41  

생활교육의 중심은 상과 벌을 주는데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은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즉, 학생들에게 좋은 인간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에는 관계에서 어떤 갈등도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해결되지 않으면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 사이에서, 또 나 자신과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갈등이 없는 듯 보인다면,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학습하면 갈등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룹 활동을 시키면 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렇게 갈등을 겪으면서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어떤 역할을 할 줄 알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죠. 가르친 내용을 잘 익혔는지도 알게 됩니다.

관계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언젠가 대학 후배들과 강의실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20년 후배인 예비 선생님들께 대학시절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 자신과의 관계를 잘 맺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없고, 교사에게 쓰임 받지 못할 삶의 걸음은 없어. 힘들고 어렵게만 보이는 상황과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나 자신만 보지마. 좌절하지 않고 그저 천천히 걸어가면 좋은 교사가 될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진심을 전했습니다.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참 부족하고 못난 모습을 자주 드러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3학년 때의 모의 수업 시연이었습니다. 수업시연 전날에도 연습하지 않고, 엄마와 수업시연 때 입을 옷을 사러 갔던게 기억에 납니다. 생각해보면, 연습은 하기 싫어서 피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 다음날에는, 너무 덜덜 떨면서 수업하면서 제대로 말도 못해서 후배들에게 너무 창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똑똑한 후배들은 수업을 참으로 잘 했거든요. 이건 하나의 일화지만, 대학시절 내내 열등감을 많이 느꼈고, 다른 사람을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나에게 없는 것들만 보며 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더니, 한 후배님께서 "언제부터 그런 자괴감을 극복했느냐?"라고 질문하시더군요. 저는 제가 사랑하고, 또 저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부터였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나아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진심으로 환대받고, 또 환대하며 서로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이런 경험을 결국 자신을 수용하게 합니다. 아들러는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기수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미움받을 용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자기긍정이란 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나는 강하다” 라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걸세. 이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칫 우월 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지. 한편 자기수용이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걸세. 자신을 속이는 일은 없지.”

아나톨의 작은 냄비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아나톨이라는 아이는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작은 냄비를 언제나 끌고 다닙니다. 냄비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아나톨에게 마음씨 좋은 한 어른이 다가와 냄비를 가지고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고, 아나톨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그림의 작가인 이자벨 카리에는 작가의 말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냄비가 있습니다. 큰 냄비, 작은 냄비, 거추장스러운 냄 어쩌면 우리도 그런 냄비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 말에 많이 동의합니다. 아무리 없애려해도 잘 없어지지 않고, 감추려해도 언젠가는 드러나는 그런 작은 냄비들이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이 크게 느껴져서 힘겹든, 아주 작게 보여서 같이 지낼만 하든, 중요할 때마다 성가시게 나를 괴롭히거나, 조금 귀찮지만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괜찮다고 여겨지거나. 모두에게 냄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조금은 마음이 편해집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감추고 싶은 냄비가 있고, 보이는 냄비가 너무 커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에게도 내가 보지 못한 근사한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냄비 같은 존재는 자괴감이라는 감정입니다.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생각의 습관은 종종 저 자신을 괴롭게 합니다. 타인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결과에 의식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작아지는 기분입니다. 저는 제가 겪었던 경험과 연약한 부분을 통해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학생과 동료들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공감하고 도우려고 노력합니다.

학생들 중에서 관계에 서툰 아이들이 있다면, 일단 자신을 볼 수 있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힘으로 타인을 수용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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